인플레이션 2%대로 내려갔는데, 장바구니 물가는 왜 그대로인가

인플레이션 2%대로 내려갔는데, 장바구니 물가는 왜 그대로인가
Photo by carlos aranda on Unsplash

솔직히 처음엔 그냥 지나쳤는데, 알고 보니 꽤 중요한 흐름이었습니다.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고, 유럽중앙은행도 긴축을 멈추고, 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이 잡혔다”고 발표하는데 — 슈퍼마켓 계산대 앞에 선 사람들 표정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달걀 한 판이 작년보다 싸지지 않았고, 월세는 그대로고, 자동차 보험료는 오히려 올랐습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최근 2%대로 떨어졌습니다. 중앙은행들이 목표로 삼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왜 체감 물가는 여전히 무겁게 느껴지는 걸까요. 숫자를 하나씩 뜯어보니, CPI가 포착하지 못하는 구조가 보였습니다.

CPI 2.4%, 그런데 식료품 가격은 작년보다 25% 높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이 발표한 최근 CPI는 전년 대비 2.4%입니다. 연준이 목표로 하는 2%에 근접했죠. 문제는 이 수치가 기준점 대비 상승률이라는 점입니다. 물가가 하락한 게 아니라, 상승 속도가 느려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달걀 가격은 대비 약 52% 상승했습니다. 빵은 38%, 식용유는 44% 올랐습니다. 이 수치들은 미국 농무부(USDA) 식품 가격 모니터링 데이터에 나옵니다. CPI가 2.4%로 떨어졌다고 해서, 이 품목들이 2.4%만큼만 올랐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높아진 가격 위에서 추가 상승률이 둔화된 것입니다.

영국도 비슷합니다. 영국 통계청(ONS) 자료를 보면, 전체 CPI는 2.2%지만 식료품 세부 항목을 보면 치즈는 30%, 올리브오일은 47% 상승한 상태입니다. 소비자들은 전년 대비 상승률이 아니라, 지갑에서 나가는 절대 금액을 봅니다. 그 금액은 여전히 높습니다.

주거비는 CPI에서 1/3 차지하는데, 실제 체감은 절반

CPI 구성 항목 중 주거비(Shelter)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3%입니다. 그런데 실제 가계 지출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보다 훨씬 높습니다. 미국 인구조사국(Census Bureau) 데이터를 보면, 중위소득 가구의 경우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이 평균 35~40%입니다. 대도시 임차인은 50%를 넘기도 합니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같은 도시의 월세는 대비 30% 이상 올랐습니다. Zillow와 Apartment List 같은 부동산 데이터 제공업체 수치입니다. 그런데 CPI의 ‘귀속 임대료(Owner’s Equivalent Rent)’ 항목은 이보다 느리게 반영됩니다. 실제 시장 임대료가 오른 뒤 약 12~18개월 지연되어 CPI에 반영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이미 오른 월세를 내고 있는데, CPI는 그 상승분을 아직 다 반영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반대로 월세 상승이 둔화되더라도, CPI는 한동안 높은 수치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시차가 체감 물가와 공식 지표의 괴리를 만듭니다.

“CPI는 평균적인 소비 바구니를 측정하지만, 실제 가계는 평균이 아닙니다. 소득 수준, 거주 지역, 가족 구성에 따라 체감 인플레이션은 크게 다릅니다.” – 브루킹스연구소 경제학자 제이슨 퍼먼

보험료, 의료비, 교육비 — 비중은 작지만 체감은 크다

자동차 보험료는 최근 급등한 항목 중 하나입니다. 미국 보험정보원(III) 자료를 보면, 최근 자동차 보험료는 전년 대비 평균 14% 상승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차량 수리비가 올랐고, 부품 공급 문제로 수리 기간이 길어졌으며, 사고 건수도 늘었습니다.

의료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의료비 증가율은 연평균 5~6%입니다.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처방약 가격, 병원 진료비는 CPI 전체 평균보다 빠르게 오릅니다. 문제는 이런 항목들이 CPI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입니다. 자동차 보험은 CPI의 약 2.5%, 의료비는 약 8% 정도입니다.

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 항목들이 ‘필수 고정비’입니다. 줄이기 어렵고, 미룰 수 없습니다. 식료품비를 10% 줄일 수는 있어도, 자동차 보험을 안 들 수는 없습니다. 병원비를 아껴서 진료를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항목들이 오르면 가계 재정 압박은 CPI 수치가 암시하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임금은 올랐지만, 실질 구매력은 제자리

명목 임금은 분명히 올랐습니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평균 시간당 임금은 최근 전년 대비 4.2% 상승했습니다. 그런데 실질 임금, 즉 물가를 반영한 구매력은 거의 제자리입니다. 명목 임금 상승률이 4.2%인데 CPI가 2.4%라면, 실질 임금 증가는 약 1.8% 정도입니다.

문제는 앞서 본 것처럼, 실제 생활비 항목들 — 식료품, 주거비, 보험료 — 은 CPI 평균보다 빠르게 올랐다는 점입니다. 연준의 실질 개인소비지출(Real PCE) 자료를 보면, 최근 미국 가계의 저축률은 3.8%로 팬데믹 이전 7~8%보다 낮아졌습니다. 소득은 늘었지만 지출이 더 빠르게 늘어, 여유 자금이 줄어든 것입니다.

영국 가계도 비슷합니다. 영국 중앙은행(BoE) 자료를 보면, 실질 가처분소득은 최근에야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임금이 올랐지만, 물가 상승분을 빼고 나면 구매력 증가는 미미합니다. 이것이 소비자들이 “경제가 좋아졌다는데 실감이 안 난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일부 국가는 생활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직접 개입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에너지 가격 상한제를 유지하고 있고, 독일은 대중교통 정기권을 월 49유로로 제한했습니다. 영국은 에너지 요금 상한제(Energy Price Cap)를 운영하며 가계 부담을 줄이려 했지만, 최근 상한선이 다시 올라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기업들은 에너지 절약 캠페인과 비용 효율화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제조업체들은 생산 공정에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일부는 생산 시간을 전기요금이 낮은 야간으로 옮겼습니다. 소비재 기업들은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 가격은 그대로 두고 내용량을 줄이는 방식 — 으로 실질 가격을 올렸습니다. 이 역시 소비자 체감 물가를 높이는 요인입니다.

미국에서는 일부 주정부가 식료품 세금을 한시적으로 면제하거나, 저소득층 대상 식품 지원 프로그램(SNAP)을 확대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은 제한적이고, 근본적인 물가 하락을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공급망 문제, 에너지 가격 변동, 지정학적 리스크 같은 구조적 요인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동 불안과 에너지 가격, 또다시 변수로 떠오르나

최근 중동 정세 불안이 다시 커지고 있습니다. 이란과 이스라엘 간 긴장, 홍해 해운 차질 같은 이슈들이 에너지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보면, 원유 가격은 배럴당 80~90달러 사이에서 변동하고 있습니다. 중동에서 공급 차질이 생기면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에너지 가격은 물가 전반에 파급 효과가 큽니다. 운송비, 생산비, 전기료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최근 비트코인 같은 위험자산이 급락한 것도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배경에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면서, 위험 선호도가 낮아진 것입니다. 이런 불안이 실물경제로 번지면, 인플레이션 재가속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CPI를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장바구니 가격표를 봅니다. 정책 입안자와 소비자가 보는 숫자가 다르면, 정책 효과는 반감됩니다.” –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케네스 로고프

FAQ

CPI가 2%대로 떨어지면 물가가 다시 낮아지는 건가요?

아닙니다. CPI는 물가 ‘상승률’을 측정합니다. 2%는 대비 2% 더 올랐다는 뜻이지, 물가가 내려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미 높아진 가격은 그대로이고, 추가 상승 속도만 느려진 것입니다. 물가가 실제로 낮아지려면 CPI가 마이너스(디플레이션)가 돼야 하는데, 이는 경제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왜 정부 발표 인플레이션과 체감 물가가 다른가요?

CPI는 수백 가지 품목의 가중 평균입니다. 개인이 실제로 소비하는 품목 구성, 거주 지역, 소득 수준에 따라 체감 물가는 크게 달라집니다. 특히 식료품, 주거비, 보험료처럼 필수 항목이 많이 오르면, CPI 평균보다 체감 물가가 훨씬 높게 느껴집니다. 또한 주거비는 시장 변화가 CPI에 반영되기까지 시차가 있어, 괴리가 생깁니다.

앞으로 물가는 다시 안정될 수 있을까요?

여러 변수가 있습니다. 에너지 가격, 공급망 안정성, 지정학적 리스크,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이 모두 영향을 줍니다. 최근 중동 불안처럼 예상치 못한 충격이 생기면 물가는 다시 오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공급망이 정상화되고 수요가 진정되면, 일부 품목은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주거비나 서비스 가격은 구조적으로 내려가기 어렵습니다.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이 목표 구간에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느끼는 실제 생활비 부담은 여전히 높습니다. CPI 2.4%라는 숫자 뒤에는, 여전히 높은 식료품비, 올라간 주거비, 줄어든 실질 구매력이 있습니다. 정책 입안자들이 보는 지표와 소비자가 보는 가격표 사이의 간극 — 이 괴리를 어떻게 좁힐 것인지가 앞으로 과제입니다. 당신의 장바구니 영수증이 이 논의의 가장 정직한 증거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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