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일 때 금값이 오르는 이유, 중앙은행은 이미 알고 있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일 때 금값이 오르는 이유, 중앙은행은 이미 알고 있다
Photo by Kanchanara on Unsplash

업계에서 조용히 많이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금값이 온스당 3,000달러를 넘어선 시점에서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사도 되는가”가 아니라 “왜 이렇게 오르는가”입니다. 차트만 보면 설명이 안 됩니다. 달러 강세 국면에서도, 주식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할 때도 금값은 꾸준히 올랐습니다.

핵심은 실질금리입니다. 명목금리에서 인플레이션율을 빼고 남은 수익률. 이 숫자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면 금은 가만히 있어도 상대적으로 유리해집니다. 이자도 배당도 없는 자산인데, 왜 그럴까요. 데이터부터 보겠습니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라는 건 어떤 상태인가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4.2%라고 가정하겠습니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1%라면, 실질금리는 대략 1.1%입니다. 돈을 묶어두고 받는 이자가 물가 상승을 겨우 따라가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물가가 4.5%까지 오르면 어떻게 될까요. 명목금리 4.2%에서 4.5%를 빼면 -0.3%입니다. 국채를 사서 만기까지 들고 있어도 실질 구매력은 줄어듭니다. 이 상황에서 투자자는 선택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과거 데이터를 보면 패턴이 명확합니다. 2010년부터 , 미국 10년물 실질금리가 마이너스권에 머물렀던 시기 금값은 온스당 1,200달러에서 1,900달러까지 올랐습니다. 3월 이후에도 비슷했습니다. 실질금리가 -1%까지 떨어지자 금값은 1,500달러에서 2,00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금은 이자를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라면 국채도 실질 수익은 마이너스입니다. 그 순간 금의 무수익성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닙니다.” — 골드만삭스 원자재 리서치 보고서

중앙은행들은 왜 금리가 오를 때도 금을 사들이나

세계금위원회(WGC) 집계를 보면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량은 최근 3년간 연평균 1,000톤을 넘습니다. 과거 10년 평균인 450톤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입니다. 폴란드 중앙은행은 보유량을 330톤까지 늘렸고, 싱가포르 통화청은 220톤을 추가 매입했습니다.

이들은 금리가 5%를 넘는 상황에서도 금을 샀습니다. 일반 투자자 관점에서는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국채 금리가 높으면 금보다 국채가 유리해 보이니까요. 하지만 중앙은행이 보는 건 다릅니다.

첫째, 통화 가치 변동 리스크입니다. 미 국채를 보유하면 달러 가치 변동에 노출됩니다. 자국 통화 대비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면 국채 보유 수익은 환차손으로 사라질 수 있습니다. 금은 특정 통화에 묶이지 않습니다.

둘째, 제재 리스크입니다. 러시아 중앙은행 외환보유액 3,000억 달러가 동결된 사례는 모든 중앙은행에 경고음으로 울렸습니다. 미 국채는 미국 금융시스템 안에 있습니다. 금은 물리적으로 보유하면 누구도 동결할 수 없습니다.

중국 인민은행은 공식 통계상 금 보유량을 2,264톤으로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홍콩과 런던을 통해 들어온 금 수입량을 역산하면 3,000톤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발표하지 않는 이유는 시장에 신호를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일반 투자자가 실질금리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나

실질금리는 복잡한 계산 없이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물가연동채권(TIPS) 금리를 보면 됩니다. 10년물 TIPS 금리가 실질금리를 나타냅니다. 이 수치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면 금 보유 비중을 늘릴 타이밍으로 해석하는 투자자가 많습니다.

구체적 사례를 보겠습니다. 8월, 10년물 TIPS 금리는 -1.08%까지 떨어졌습니다. 같은 시기 금값은 온스당 2,067달러로 역대 최고가를 찍었습니다. 10월, TIPS 금리가 1.74%까지 오르자 금값은 1,630달러까지 내려갔습니다. 상관관계가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최근 다시 TIPS 금리가 1.8% 아래로 떨어지면서 금값은 3,00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연준이 금리 인하를 시사하고, 동시에 인플레이션이 생각보다 끈질기게 유지되면서 실질금리 하락 전망이 강해진 결과입니다.

일부 투자자는 실질금리가 -0.5% 아래로 떨어지면 포트폴리오의 10~15%를 금 관련 자산에 배분합니다. ETF, 금광주, 실물 금 중에서 선택합니다. 각각 장단점이 있습니다. ETF는 유동성이 높지만 보관료가 붙고, 실물은 안전하지만 프리미엄과 세금이 발생합니다.

구리, 은, 원유도 실질금리에 반응하는가

금만큼 민감하지는 않지만, 다른 원자재도 실질금리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은은 금과 비슷한 패턴을 보입니다. 금·은 비율(Gold-Silver Ratio)을 보면 금 1온스를 사는 데 은이 몇 온스 필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과거 평균은 60 내외였지만, 최근에는 80을 넘나듭니다. 은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가면 은도 함께 오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은은 산업 수요 비중이 50%를 넘기 때문에 경기 사이클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구리는 조금 다릅니다. 실질금리보다 중국 제조업 지표와 더 밀접하게 움직입니다. 중국 제조업 PMI가 50을 넘으면 구리 가격이 오르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최근 구리값이 톤당 9,800달러까지 오른 건 중국의 인프라 투자 확대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원유는 실질금리보다 지정학 리스크에 더 크게 반응합니다. 중동 긴장, OPEC+ 감산 결정, 미국 전략비축유 방출 여부가 가격을 좌우합니다. 다만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일 때 원자재 전반에 자금이 몰리면서 원유도 동반 상승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지금 실질금리는 어느 수준이고,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미국 10년물 TIPS 금리는 최근 1.6%대를 기록했습니다. 명목금리 4.3%, 기대인플레이션 2.7% 정도로 계산하면 나오는 수치입니다. 마이너스는 아니지만, 2.3%에 비하면 낮아진 상태입니다.

연준이 안에 금리를 인하하면 명목금리는 내려갑니다. 동시에 인플레이션이 2%까지 떨어지지 않고 2.5% 근처에서 버티면 실질금리는 더 낮아질 수 있습니다. 시장은 이 시나리오를 반영해 금값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반대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빠르게 내려가고, 연준이 금리 인하를 늦추면 실질금리는 상승합니다. 그러면 금값은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반기가 그런 경우였습니다.

“실질금리는 금값의 방향을 예측하는 가장 신뢰할 만한 지표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유일한 지표는 아닙니다. 지정학 리스크, 달러 강약, 중앙은행 매입량을 함께 봐야 합니다.” — UBS 글로벌 자산배분 전략 보고서

실질금리 외에 금값을 움직이는 변수들

실질금리가 설명력이 높지만, 모든 걸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최근 금값 급등에는 몇 가지 요인이 겹쳤습니다.

첫째, 중앙은행 매입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연간 1,000톤 이상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시장에서 금을 흡수합니다. 이건 가격에 바닥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둘째, 지정학 리스크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긴장, 미중 갈등이 격화될 때마다 금은 안전자산으로 선호됩니다. 실질금리가 플러스여도 금값이 오르는 예외 상황은 대부분 이 요인 때문입니다.

셋째, 달러 약세입니다. 금은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 인덱스가 내려가면 금값은 상대적으로 오릅니다. 유로존, 일본, 중국 투자자 입장에서는 환율 효과까지 더해져 금 매력이 높아집니다.

넷째, ETF 수요입니다. SPDR Gold Shares(GLD) 같은 금 ETF로 자금이 몰려들면 가격은 빠르게 반응합니다. 최근 GLD 보유량은 900톤을 넘어섰습니다. 같은 시기보다 12% 늘어난 수치입니다.

FAQ

실질금리가 플러스로 돌아서면 금값은 반드시 내려가나?

과거 데이터를 보면 실질금리가 플러스로 전환될 때 금값이 조정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절대적 법칙은 아닙니다. 중앙은행 매입, 지정학 리스크, 달러 약세가 겹치면 실질금리 상승 국면에서도 금값이 버티거나 오를 수 있습니다. 실질금리는 방향성을 보는 도구지, 정확한 타이밍을 맞추는 도구는 아닙니다.

금 ETF와 실물 금 중 어느 쪽이 실질금리 변화에 더 민감한가?

ETF가 더 민감합니다. ETF는 유동성이 높고 기관 투자자가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실질금리 변화에 빠르게 반응합니다. 실물 금은 프리미엄, 보관 비용, 거래 절차가 있어서 단기 변동성에 덜 민감합니다. 장기 보유 목적이라면 실물, 단기 트레이딩이라면 ETF가 적합합니다.

실질금리 데이터는 어디서 확인할 수 있나?

미국 재무부 웹사이트에서 TIPS 금리를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FRED(Federal Reserve Economic Data)에서도 실질금리 그래프를 제공합니다. 블룸버그, 로이터 같은 금융 정보 단말기를 쓴다면 실시간 데이터를 볼 수 있습니다. 무료로는 TradingView에서 TIPS 금리 차트를 확인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실질금리와 금값의 관계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이걸 투자에 활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숫자 하나만 보고 판단하기엔 변수가 많고, 여러 지표를 함께 보려면 손이 많이 갑니다. 하지만 중앙은행들은 이미 그렇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개인 투자자도 같은 데이터를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석하고, 언제 움직일지는 각자의 판단입니다.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