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 환매 대란 올 때 당신 돈은 얼마나 빨리 빠져나올 수 있나

ETF 환매 대란 올 때 당신 돈은 얼마나 빨리 빠져나올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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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이 얘기가 계속 눈에 밟혔습니다. 은행 예금이 빠져나가면서 ETF로 자금이 대거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37조원 규모가 한 분기 만에 움직였다는 보도가 나왔고, ETF 시장 규모는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흐름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면서, ETF의 구조적 약점에 대한 논의는 뒤로 밀렸다는 점입니다.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다”는 편리함만 부각되고, 실제로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빠르게 현금화할 수 있는지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팔고 싶을 때 정말 팔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예금 37조가 빠져나간 자리를 ETF가 채웠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지난 1분기 동안 은행 요구불예금과 정기예금에서 총 37조원이 빠져나갔습니다. 같은 기간 국내 상장 ETF 순자산총액은 14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한 수치입니다.

투자자들은 금리가 내려가는 국면에서 예금 이자가 매력을 잃자, 배당 ETF, 채권 ETF, 그리고 레버리지 상품까지 다양한 ETF로 돈을 옮겼습니다. 특히 미국 S&P500 ETF와 나스닥100 ETF에는 한 달 사이 2조원이 넘는 자금이 몰렸습니다.

편리함은 분명합니다. 증권사 앱 하나로 실시간 거래가 가능하고, 소액으로도 분산투자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편리함이 유동성에 대한 착각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ETF는 주식처럼 팔린다, 하지만 주식은 아니다

ETF는 거래소에 상장되어 있어서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사고팔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복잡한 구조가 숨어 있습니다. ETF 가격은 기초자산의 가치를 따라가야 하지만, 실제로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괴리율이 발생합니다.

평소에는 AP(지정참가자)라는 금융기관들이 ETF 주식을 생성하고 소각하면서 이 괴리를 좁힙니다. 하지만 시장이 급격히 흔들릴 때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유동성은 필요할 때 없고, 필요 없을 때 넘친다.” — 워런 버핏

3월 코로나 충격 당시, 미국에서는 일부 채권 ETF의 시장가격이 순자산가치(NAV) 대비 5~10% 낮게 거래된 적이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급하게 팔려고 하자 살 사람이 없었고, 가격은 기초자산 가치보다 훨씬 떨어졌습니다. 결국 연준이 개입해서 ETF를 직접 사들이면서 시장이 안정됐습니다.

레버리지 ETF는 유동성 위험을 배로 키운다

국내에서 특히 인기 있는 상품이 레버리지와 인버스 ETF입니다. 지수 변동폭의 2배, 3배를 추종하는 구조라서 수익도 크지만 손실도 빠릅니다. 문제는 이들 상품이 매일 리밸런싱을 해야 하기 때문에 거래량이 많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국내 레버리지 ETF 중 일부는 하루 거래량이 순자산총액의 50%를 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상 시장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급락장에서 투자자들이 동시에 매도 주문을 넣으면 호가가 급격히 벌어질 수 있습니다.

8월 미국 고용지표 발표 직후, 국내 나스닥 레버리지 ETF의 매도 호가는 한때 전일 대비 15% 낮은 가격에 걸려 있었습니다. 실제 나스닥 지수는 6% 하락했지만, 레버리지 상품은 가격 발견이 제대로 되지 않아 더 큰 할인율로 거래됐습니다.

환매 대기 시간, 생각보다 길 수 있다

ETF는 주식과 달리 환매 절차가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ETF는 시차 문제로 실제 기초자산을 처분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미국 주식 ETF의 경우, 한국 시장이 열려 있을 때 미국 시장은 닫혀 있습니다.

일부 ETF 운용사는 유동성 확보를 위해 선물이나 스왑 계약을 활용하지만, 이 또한 거래 상대방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크레디트스위스 사태 당시, 일부 유럽 ETF는 스왑 계약 상대방이었던 은행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가격이 출렁였습니다.

국내 ETF 중에서도 유동성 공급자(LP)가 1~2곳에 불과한 상품들이 있습니다. LP가 시장에서 빠지면 호가 스프레드가 급격히 벌어지고, 투자자는 불리한 가격에 거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규제는 있지만, 위기 상황을 가정하지 않는다

금융당국은 ETF 운용사에 일정 수준 이상의 유동성 자산 보유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준은 평상시 환매 수요를 기준으로 설계됐습니다. 시장 전체가 동시에 흔들리는 상황, 이른바 ‘systemic shock’에 대비한 스트레스 테스트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보고서에서 ETF 시장의 급성장이 금융 안정성에 새로운 리스크를 추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개인 투자자 비중이 높은 시장에서는 군중심리에 따른 동시 매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ETF는 유동성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유동성의 환상을 제공한다.” — BIS 보고서 중

투자자는 무엇을 확인해야 하나

그렇다면 ETF에 투자하는 사람은 어떤 점을 봐야 할까요. 수익률만 보고 고르는 건 위험합니다. 몇 가지 확인할 지표가 있습니다.

첫째, 일평균 거래량과 거래대금입니다. 거래량이 많을수록 사고팔 때 가격 충격이 적습니다. 일평균 거래대금이 10억원 이상인 상품이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둘째, 호가 스프레드입니다.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의 차이가 클수록 거래 비용이 늘어납니다. ETF 상세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셋째, 괴리율과 추적오차입니다. ETF 가격이 순자산가치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지수 대비 수익률 차이는 얼마나 되는지 봐야 합니다. 괴리율이 지속적으로 크다면 유동성 공급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넷째, LP 숫자입니다. 유동성 공급자가 여러 곳이면 한 곳이 빠져도 시장이 유지됩니다. 반대로 LP가 1곳뿐이라면 위기 시 유동성이 급격히 마를 수 있습니다.

ETF 환매 제한이 걸린 적이 실제로 있나?

국내에서는 아직 대규모 환매 제한 사례는 없지만, 해외에서는 여러 차례 발생했습니다. 3월 미국에서는 일부 정크본드 ETF가 환매 압력을 견디지 못해 할인율이 10%를 넘었고, 운용사가 임의로 신규 설정을 중단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순자산총액이 급격히 줄어든 ETF는 상장폐지 수순을 밟기도 합니다.

비트코인 ETF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나?

비트코인 현물 ETF는 기초자산이 24시간 거래되기 때문에 시차 문제는 덜합니다. 하지만 거래소 유동성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리스크는 남아 있습니다. 특히 대규모 환매가 발생하면 ETF 운용사가 비트코인을 시장에 던져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가격이 급락할 수 있습니다. 미국 비트코인 ETF 중 일부는 출시 초기 유동성 부족으로 할인율이 3% 이상 벌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은행 예금처럼 보호받을 수 있나?

아닙니다. 예금자보호법은 은행 예금에만 적용됩니다. ETF는 투자상품이므로 원금 보장이 없고, 운용사가 파산해도 예금자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다만 자산은 수탁회사에 별도 보관되므로 운용사 파산과 투자금은 분리됩니다. 하지만 시장 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은 고스란히 투자자 몫입니다.

37조원이 예금에서 빠져나와 ETF로 향하고 있는 지금, 유동성은 단순히 “거래소에 상장돼 있다”는 것만으로 보장되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문제가 없지만, 시장이 흔들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편리함과 수익률 뒤에 숨어 있는 구조를 이해하고, 내가 가진 상품이 실제로 얼마나 빨리 현금화될 수 있는지 확인해보는 게 필요합니다.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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