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펼치다 보면 가끔 이런 인터뷰를 만난다. 포털 메인에도 뜨지 않고, SNS 알고리즘이 추천해주지도 않는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지면 한 켠에 조용히 실린, 그러나 생각보다 훨씬 묵직한 이야기. 최근 매일경제에서 MIT 물리학과 최승원 교수와의 인터뷰를 읽었다. 핵심은 단 한 마디였다. 양자컴퓨터 시대는 30년 이내에 반드시 온다.
양자컴퓨터란 무엇인가 — 기본 개념부터
양자컴퓨터를 이해하려면 먼저 지금 우리가 쓰는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한다. 현재의 컴퓨터는 0과 1, 두 가지 상태만 처리하는 비트(bit) 단위로 모든 연산을 수행한다. 반도체 트랜지스터를 수십억 개 집적해서 만든 이 구조는 지난 수십 년간 놀라운 성능 향상을 이뤄냈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큐비트(qubit)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큐비트는 0과 1을 동시에 표현하는 ‘중첩(superposition)’ 상태가 가능하다. 두 개의 큐비트가 있으면 00, 01, 10, 11 네 가지 상태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고, 큐비트가 늘어날수록 처리 가능한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론적으로 300큐비트 양자컴퓨터는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 수보다 많은 경우의 수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지금의 AI가 넘지 못하는 벽
최승원 교수가 지적한 핵심은 현재 AI의 물리적 한계다. 챗GPT, 클로드, 제미나이 등 지금의 인공지능은 모두 고전물리학에 기반한 반도체 위에서 작동한다. 문제는 자연현상의 실제 작동 원리가 고전물리학이 아닌 양자역학에 있다는 점이다.
원자 단위의 거동,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메커니즘, 분자가 결합하고 변형되는 방식 — 이 모든 것은 양자역학의 언어로만 정확하게 기술된다. 현재의 AI와 슈퍼컴퓨터는 이를 근사치로만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신약 개발, 신소재 발견, 기후 모델링처럼 양자적 현상을 정밀하게 다뤄야 하는 분야에서 이 구조적 한계는 특히 두드러진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컴퓨터의 등장은 단순히 더 빠른 컴퓨터의 출현이 아니다. 기존 컴퓨터로는 접근조차 불가능했던 문제를 풀 수 있는 완전히 다른 연산 패러다임의 시작이다.
양자컴퓨터가 바꿀 산업들
양자컴퓨터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을 분야는 다음과 같다.
- 제약·바이오 — 단백질 구조를 원자 단위에서 정밀 시뮬레이션해 신약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
- 신소재·배터리 — 분자 수준의 물질 특성을 계산해 차세대 배터리, 반도체 소재 발굴
- 금융·최적화 — 수천 개 변수를 동시에 고려하는 포트폴리오 최적화, 리스크 계산
- 암호·보안 — 현재의 RSA 암호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어 새로운 양자내성암호 체계 필요
- 기후·에너지 — 복잡한 기후 시스템 모델링, 핵융합 플라즈마 시뮬레이션
30년이라는 시간이 의미하는 것
최 교수는 양자컴퓨터 시대가 “최소한 30년 이내”에 온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이 말을 낙관론으로 읽고, 어떤 이는 아직 멀다고 읽는다. 하지만 이 발언은 굉장히 정직한 현실 인식이다.
현재 IBM, Google, IonQ, Rigetti 등 글로벌 기업들이 양자컴퓨팅 연구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IBM은 2025년까지 4,000큐비트 이상의 시스템 로드맵을 공개했고, Google은 이미 특정 연산에서 슈퍼컴퓨터를 압도하는 ‘양자 우월성’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실용적인 범용 양자컴퓨터가 나오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큐비트의 결어긋남(decoherence) 문제, 오류 정정 알고리즘의 복잡성, 극저온 구동 환경 등이 그것이다.
30년은 긴 시간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이 일반인에게 보급된 게 1990년대였고,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꾼 것이 2010년대였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그 변화들도 당대에는 ‘아직 멀다’고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성급한 미래 예측이 오히려 위험하다
인터뷰에서 최 교수가 특히 강조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지금의 어른들과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미래를 규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AI가 이렇게 될 거라, 양자컴퓨터로 이런 직업이 사라질 거라 — 이런 단언들이 쏟아진다.
그런데 기술의 역사를 보면 전문가들조차 정확히 예측한 경우가 드물다. 인터넷의 파급력을 1990년대에 제대로 내다본 사람이 많지 않았고, AI 언어 모델이 이렇게까지 발전할 거라고 2015년에 확신한 전문가도 소수였다. 기술 혁명은 언제나 예상보다 느리게 왔다가, 어느 순간 예상보다 빠르게 세상을 뒤집는다.
그래서 교수의 조언은 단순하다. 어떤 미래가 와도 대응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을 키워라. 수학, 물리학, 전산학 같은 기초 학문이 그 토대가 된다. 특정 기술 트렌드를 쫓는 것보다, 원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훨씬 오래 간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미래를 예상하려 하지 말고, 수학·물리학·전산학 등 기초 학문을 공부해야 한다.”
— 최승원 교수, MIT 물리학과
양자컴퓨터 관련 투자, 어떻게 접근할까
양자컴퓨팅 관련주는 최근 AI 투자 열기가 과열되면서 반사적으로 주가가 많이 조정된 상태다. 단기적으로는 상용화 시점이 불확실하고 수익 모델도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이 부담이다.
그럼에도 중장기적으로 이 섹터를 외면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반도체가 지금의 디지털 경제를 만들었듯, 양자컴퓨팅은 다음 경제 패러다임의 물리적 인프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당장 핵심 포지션을 잡기보다는, 관심 종목을 선별해두고 기술 진전과 함께 분할 접근하는 전략이 현실적이다.
특히 오류 정정(error correction) 기술과 큐비트 안정성 분야에서 앞서 있는 기업, 그리고 양자컴퓨팅과 AI를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접근을 추진 중인 기업들이 중장기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투자 결정 전에는 반드시 기업의 기술 로드맵과 파트너십 현황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과 대화하라는 말의 진짜 의미
인터뷰 말미에 교수가 한 말이 오래 남았다.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라.” 양자컴퓨터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아이들 이야기라니, 처음엔 맥락이 뜬금없다고 느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결국 같은 말이다.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미래를 실제로 살아갈 사람들이 지금의 아이들이다. 양자컴퓨터가 일상이 된 세상, 우리는 아직 상상도 못할 직업과 문제들이 기다리는 세상을 그들이 헤쳐나가야 한다. 아이들과의 대화는 정해진 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가도록 돕는 일이다.
마치며 — 신문을 읽는다는 것의 가치
이런 인터뷰가 포털 메인에 뜨지 않는다는 게 아쉽다. 좋아요 수백만 개짜리 쇼츠 영상보다 이 인터뷰 한 편이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신문을 읽는 것, 특히 깊이 있는 전문가 인터뷰를 찾아 읽는 습관이 점점 더 희귀한 역량이 되는 시대다.
모두가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콘텐츠를 소비할 때, 스스로 찾아 읽는 사람은 다른 정보를 갖게 된다. 양자컴퓨터처럼 아직 주류가 아닌 기술을 지금부터 공부해두는 것, 그게 10년 뒤의 차이를 만드는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관심 있는 분들은 매일경제 원문 인터뷰도 직접 찾아보시길 권한다. 요약은 결국 요약일 뿐이니까.
관심 있는 분들은 매일경제 원문 인터뷰도 직접 찾아보시길 권한다. 요약은 결국 요약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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