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이 얘기가 계속 눈에 밟혔습니다. 트럼프가 5월 방중 일정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태평양은 두 나라가 함께 쓰기에 충분히 넓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 내내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되며 반도체 수출 통제와 기술 동맹 압박을 받던 중국이, 새 행정부를 향해 다른 톤으로 말을 건 겁니다.
같은 시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휴전 협상 테이블에 앉겠다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800억 달러 넘게 군사·경제 지원을 쏟아부으며 키이우를 떠받치던 구도에서, 트럼프는 “24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해왔습니다. 실제로 가능한지와 별개로, 모스크바와 베이징은 백악관 주인이 바뀌는 순간을 기다렸다는 인상을 줍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 외교 기조 변화가 반도체·배터리·철강 수출 환경에 직결됩니다. 대중 관세 구조가 어떻게 재설계되고, 우크라이나 재건 수요가 실제로 열리는지,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이 정상화되면 유럽 제조업 원가가 어떻게 바뀌는지—숫자와 사례로 정리해봤습니다.
바이든 4년, 중국을 어떻게 대했나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못 박았습니다. 트럼프가 시작한 관세전쟁을 그대로 유지한 데 더해, 반도체·AI·양자컴퓨팅 같은 핵심 기술 영역에서 수출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엔비디아의 A100·H100 GPU는 중국 수출이 금지됐고, ASML의 EUV 장비 반출도 네덜란드 정부를 통해 막았습니다.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 자료를 보면, 중국 기업 대상 수출 통제 리스트(Entity List)는 초 약 320개에서 말 600개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여기엔 SMIC·YMTC 같은 반도체 기업뿐 아니라 AI 스타트업, 드론 제조사, 심지어 바이오 연구기관까지 포함됩니다.
동맹 동원 전략도 두드러졌습니다. 바이든은 한국·일본·대만을 묶어 ‘칩4 동맹’을 추진했고, 인도·호주와는 쿼드(Quad) 틀에서 인도-태평양 공급망 재편을 논의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라는 압박과, 미국 IRA·CHIPS법 보조금을 받으려면 중국 투자를 제한해야 한다는 조건이 동시에 걸렸습니다.
“우리는 중국과 디커플링하는 게 아니라, 디리스킹(de-risking)하는 것이다.” —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브루킹스연구소 연설
실제 수치로 보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25.9%에서 22.3%로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대미 수출 비중은 14.5%에서 17.8%로 늘었습니다. 반도체·배터리 기업들이 텍사스·조지아에 공장을 세우고, 중국 내 생산 비중을 낮춘 결과입니다.
트럼프는 왜 다른 접근을 예고하나
트럼프는 1기 때부터 “동맹은 공짜가 아니다”라는 입장이었습니다. 2기 인선을 보면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마이크 월츠 국가안보보좌관 등 대중 강경파가 포진했지만, 트럼프 본인은 시진핑과의 거래 가능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관세를 60%까지 올릴 수도 있지만, 시진핑이 좋은 딜을 가져오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식입니다.
바이든의 다자 동맹 중심 접근과 달리, 트럼프는 양자 협상을 선호합니다.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에너지를 대량 구매하거나, 펜타닐 단속에 협력하면 반도체 통제를 일부 완화할 여지를 남겨두는 식입니다. 실제로 1기 때 체결된 1단계 무역합의(Phase One Deal)에서 중국은 2년간 미국산 제품 2,000억 달러어치를 추가 구매하기로 약속했고, 그 대가로 일부 관세가 철회됐습니다.
문제는 이 방식이 한국 같은 중간 국가에겐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점입니다. 바이든 시기엔 ‘중국 vs 미국 동맹’ 구도가 명확했지만, 트럼프 하에서는 미·중이 특정 이슈에서 거래하고 한국이 소외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이 미국산 LNG를 대량 수입하는 조건으로 한국산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관세를 유지한다면, 여수·울산 석유화학단지는 타격을 입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협상이 열리면 달라지는 것들
트럼프는 선거 유세 내내 “우크라이나에 쏟아붓는 돈을 미국 인프라에 쓰겠다”고 말했습니다. 바이든 정부는 2월 전쟁 발발 이후 총 약 850억 달러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습니다. 이 중 군사 지원이 500억 달러, 경제·인도적 지원이 350억 달러 규모입니다.
트럼프가 실제로 24시간 안에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휴전 협상이 본격화되면 몇 가지 변수가 생깁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재개 여부, 우크라이나 재건 수요 규모,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완화 속도 등입니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TTF 기준)은 전쟁 직후 MWh당 200유로를 넘었다가, 최근엔 40유로 안팎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래도 전쟁 이전 20유로 수준보다는 두 배 높습니다. 만약 러시아산 가스가 파이프라인을 통해 다시 들어온다면, 독일·폴란드 제조업 에너지 비용이 크게 낮아집니다. 한국 철강·화학 기업이 유럽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커지는 겁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 재건 수요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세계은행은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 비용을 최소 4,110억 달러로 추산했습니다. 인프라·주택·전력망 재건 과정에서 한국 건설·플랜트 기업이 진출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이는 휴전 합의 내용과 재건 재원 조달 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중국의 ‘태평양 공유’ 메시지, 어디까지 진심인가
중국 외교부가 공개한 영상은 시진핑이 오바마 행정부 시절 했던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을 담기에 충분히 넓다”는 발언을 재활용한 것입니다. 당시엔 미·중 관계가 지금보다 훨씬 협력적이었습니다. 중국은 기후변화 파리협정에 동참했고, 북핵 문제에서 미국과 공조했습니다.
지금 중국이 이 메시지를 다시 꺼낸 건, 트럼프가 거래 지향적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입니다. 중국은 이미 미국산 대두 수입을 늘렸고, 보잉 항공기 추가 발주 가능성을 흘렸습니다. 동시에 남중국해에서는 필리핀 선박에 대한 물대포 공격을 이어가고, 대만 주변 군사 훈련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 사령부 자료를 보면, 중국 해군 함정의 대만 해협 통과 횟수는 월평균 15회에서 22회로 늘었습니다. 중국은 경제 협력 카드를 내밀면서도, 군사적 압박은 유지하는 ‘투트랙’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이 관세를 협상 테이블로 가져오면, 우리는 시장 접근을 가져간다. 누가 더 절실한지는 시간이 증명할 것이다.” — 왕이 중국 외교부장, 지난달 뮌헨안보회의 연설
한국 기업이 체감하는 실질 변화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미국 CHIPS법 보조금을 받기 위해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증설을 동결했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요구한 ‘가드레일’ 조항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28nm 이하 공정 증설을 10년간 금지하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트럼프가 이 조항을 완화할지는 불투명합니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중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막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 기업이 중국에서 돈을 벌지 못하면 결국 중국 기업만 이득”이라는 논리도 폈습니다. 양측 주장이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배터리 업계는 IRA 세액공제 요건 변화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산 핵심광물·부품 비중을 단계적으로 낮추도록 했습니다. 기준으로 배터리 부품의 60%, 핵심광물의 50%가 북미·FTA 체결국에서 나와야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비율은 매년 올라갑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합작으로 오하이오·테네시에 배터리 공장을 지었고,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인디애나 공장을 가동 중입니다. 투자 규모는 각각 30억 달러, 25억 달러입니다. 트럼프가 IRA 자체를 폐지할 가능성은 낮지만, 세부 요건을 바꿔 중국산 흑연·리튬 사용 허용 범위를 넓힐 여지는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원가 부담이 줄어듭니다.
숫자로 보는 외교 기조 변화의 파급
구체적인 사례 두 가지를 더 보겠습니다. 하나는 관세, 다른 하나는 에너지입니다.
트럼프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60%까지 올리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현재 평균 관세율은 19.3%입니다. 60%가 실제로 적용되면, 중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소비재 가격이 급등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트럼프는 “멕시코·베트남을 거쳐 들어오는 우회 수입도 막겠다”고 했습니다. 한국 기업 중 베트남·멕시코 공장을 통해 미국에 수출하는 곳이 많은데, 원산지 검증이 강화되면 영향을 받습니다.
포스코는 멕시코 몬테레이에 자동차 강판 공장을 운영 중입니다. 연산 40만 톤 규모로, 대부분 미국 GM·포드에 납품합니다. 만약 트럼프 정부가 “멕시코산 철강도 관세 대상”이라고 선언하면, 포스코는 추가 관세 부담을 떠안거나 미국 내 직접 투자를 늘려야 합니다.
에너지 쪽을 보면, 러시아와의 휴전 협상이 타결될 경우 유럽이 러시아산 LNG를 다시 수입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쟁 이전 유럽은 천연가스 수입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했습니다. 지금은 10% 미만으로 떨어졌고, 그 빈자리를 미국·카타르·호주산 LNG가 메웠습니다.
한국은 LNG 수입의 약 8%를 미국에서, 12%를 카타르에서 가져옵니다. 유럽이 러시아산 가스를 다시 쓰면, 미국·카타르산 LNG 수요가 줄어 가격이 내려갈 수 있습니다. 한국 전력·가스공사 입장에서는 수입 단가 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유럽 화학·철강 기업이 원가 경쟁력을 회복하면, 한국 수출 기업에겐 부담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트럼프가 IRA를 폐지하면 한국 배터리 기업 투자는 어떻게 되나?
IRA 전면 폐지는 의회 동의가 필요해 현실성이 낮습니다. 다만 세부 요건 완화는 가능합니다. 중국산 부품 허용 비율을 높이거나, 세액공제 금액을 줄이는 방식입니다. 이미 착공한 공장은 계약상 보조금을 받지만, 신규 투자 결정은 지연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이 성사되면 한국 건설사에 기회가 오나?
세계은행·EU가 주도하는 재건 프로그램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재원 조달 방식과 입찰 조건이 관건입니다. 폴란드·터키 기업이 지리적으로 가깝고, 유럽 기준 인증을 이미 보유해 경쟁 우위에 있습니다. 한국은 발전소·스마트시티 같은 고부가 프로젝트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이 미국과 거래하면 한국은 소외되는 건가?
양자 협상 구도에서는 그럴 위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LNG를 대량 구매하는 대신 반도체 통제 완화를 받아내면, 한국산 중간재 수요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트럼프가 동맹 부담 분담을 요구하면서 한국에 방위비 인상을 압박하고, 그 대가로 중국 시장 접근을 도와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결국 한국 정부의 협상력이 시험대에 오릅니다.
바이든 시기에는 동맹 네트워크 안에 있으면 예측 가능했습니다. 중국과 거리 두기, 미국 투자 확대, 기술 통제 준수—이 세 가지만 지키면 됐습니다. 트럼프 2기는 그 확실성이 흔들립니다. 미·중이 특정 분야에서 손잡고, 한국이 그 밖에 남겨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중국이 다시 강하게 밀어붙이면 트럼프도 1기처럼 관세 전쟁을 재개할 수 있습니다.
확실한 건, 워싱턴 외교팀이 바뀌는 순간 베이징과 모스크바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새 행정부의 첫 100일이 협상 창구가 열리는 시기라는 걸 압니다. 한국도 그 창을 어떻게 활용할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선택지는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어느 쪽을 고를지는 우리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