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엔 그냥 지나쳤는데, 알고 보니 꽤 중요한 흐름이었습니다. 이란의 UAE 공격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진 미-이란 군사 충돌 뉴스를 보면서 대부분은 원유 가격만 떠올립니다. 하지만 지난 몇 주간 금융권에서 나온 리포트들을 읽다 보니, 이 사건이 단순히 에너지 가격 변동을 넘어 달러 중심 국제 결제 시스템 전체에 대한 재평가를 촉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같은 시기 HSBC는 4분기 순이익이 전년 대비 78% 급감했고, UniCredit은 유럽 은행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면서 서방 금융권의 균열이 드러났습니다. 두 흐름이 동시에 진행되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반복되는 패턴이 있거든요—달러 결제망에서 배제될 위험을 느낀 국가들이 대안 시스템 구축에 속도를 내는 것.
호르무즈 해협 사태, 숫자로 보면 무게감이 다릅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운송량의 약 21%가 통과하는 지점입니다. 하루 평균 2,100만 배럴이 이 좁은 수로를 지나갑니다. 이란이 이곳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할 때마다 유가는 배럴당 5~10달러씩 튀어 올랐죠.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습니다. 이란군이 UAE 연안 시설에 드론 공격을 감행하고, 미 해군 구축함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고속정과 교전했는데도 브렌트유는 배럴당 85달러 선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시장이 둔감해진 게 아니라, 이미 상당수 아시아 수입국들이 달러 결제를 우회하는 구조를 만들어뒀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이란과 위안화 직거래 결제 비중을 늘렸고, 인도는 UAE와 루피-디르함 직접 결제 채널을 가동 중입니다. 두바이 상품거래소에선 위안화 표시 원유 선물 거래량이 전년 대비 340% 증가했습니다. 이 정도면 단순히 “실험” 수준을 넘어선 겁니다.
유럽 은행들이 동시다발로 흔들리는 이유
HSBC 실적 발표 자료를 보면 순이익 급감의 주된 원인은 중국 부동산 익스포저 손실 확대와 홍콩 달러 예금 유출이었습니다. 특히 홍콩에서 관리하던 역외 달러 예금이 분기 기준 270억 달러 감소했는데, 이 자금 상당수가 싱가포르와 두바이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UniCredit은 독일 Commerzbank 인수를 검토하면서 유럽 은행권 통합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표면적으론 규모의 경제를 이유로 들지만, 실제론 미국 금리 인상 사이클 이후 달러 조달 비용이 급등하면서 유럽 은행들이 수익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배경이 큽니다. ECB 데이터 기준 유로존 은행들의 평균 달러 조달 스프레드는 LIBOR+180bp까지 벌어졌습니다.
“서방 은행들이 달러 유동성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동안, 중동과 아시아 은행들은 현지 통화 기반 결제망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습니다.” — JP모건 아시아 전략 책임자 인터뷰 中
BRICS 결제 시스템, 실제로 얼마나 작동하고 있나
탈달러화 논의가 나올 때마다 회의론자들은 “대안이 없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최근 몇 년간 상황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BRICS 국가들이 추진 중인 결제 시스템은 아직 SWIFT를 완전히 대체하진 못하지만, 특정 거래 영역에선 이미 실용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운영하는 SPFS(금융정보전송시스템)엔 현재 159개 금융기관이 연결돼 있고, 중국 CIPS(위안화 국제결제시스템) 참가 기관은 1,394개에 달합니다. 인도는 18개국과 루피 직거래 협정을 맺었고, UAE 중앙은행은 사우디·이집트와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기반 결제 테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이란은 미국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중국·러시아와 암호화폐 기반 무역 결제를 시범 운영 중입니다. 공식 집계는 없지만 업계 추산으로 월 5억 달러 규모가 이런 방식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액수 자체는 작지만, 제재 대상국들이 달러 없이도 무역을 지속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달러 패권은 정말 흔들리고 있는가, 데이터로 확인하면
IMF COFER 데이터를 보면 달러의 글로벌 외환보유액 비중은 여전히 58.4%입니다. 10년 전 65%에서 줄긴 했지만, 여전히 압도적입니다. 위안화는 2.7%, 유로는 20% 수준이죠. 숫자만 보면 “탈달러화는 과장”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비중이 아니라 변화 속도와 방향입니다. 중국 인민은행 데이터에 따르면 위안화 국제결제 비중은 3.2%까지 올랐고, 일대일로 국가들과의 무역 결제에선 28%가 위안화로 이뤄집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상하이석유거래소에서 위안화 표시 원유 선물을 정기 매입하고 있고, 브라질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달러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SWIFT 자체도 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은행들이 제재로 SWIFT에서 퇴출된 이후, 비서방 국가들은 SWIFT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은 자체 지역 결제망 구축 협의를 시작했고, 아세안 중앙은행들은 현지 통화 직거래 비중을 2030년까지 40%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내놨습니다.
지정학적 분열이 금융 질서 재편을 앞당기는 구조
이번 호르무즈 사태가 보여준 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때 금융 시스템도 함께 재편된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이 제재 카드를 꺼낼 때마다 대상국들은 달러 의존도를 낮추는 방법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중국·러시아·인도 같은 국가들이 대안 인프라를 구축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유럽 은행들의 실적 악화는 이 과정의 또 다른 신호입니다. 달러 금리가 높아지면 유럽·아시아 은행들은 달러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이는 자연스럽게 역내 통화 중심 금융 구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HSBC가 홍콩에서 예금 유출을 경험한 건 단순히 중국 리스크 때문만이 아니라, 아시아 자금이 달러 중심 시스템 밖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경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다극화된 통화 체제로의 전환은 10년 이상 걸리겠지만, 그 방향성은 이미 명확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미국 재무부도 내부 문서에서 “달러 패권 유지를 위한 전략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시장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금값이 온스당 3,300달러를 넘어선 건 우연이 아닙니다. 금은 전통적으로 달러 약세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반응하는 자산이지만, 최근 몇 년간은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이 가격 상승을 주도했습니다. 중국·러시아·인도·터키 중앙은행들은 지난 2년간 1,200톤 이상의 금을 순매수했습니다.
비트코인도 비슷한 맥락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엘살바도르·중앙아프리카공화국 같은 소규모 국가들이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건 상징적 의미가 크지만, 더 중요한 건 민간 부문에서 국경 간 결제 수단으로 암호화폐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에선 달러 부족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실질적 대안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탈달러화는 단일 통화가 달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결제 수단과 통화가 공존하는 구조로 가는 과정입니다.” — BIS(국제결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FAQ
탈달러화가 현실화되면 미국 경제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
단기적으론 미국 국채 수요 감소로 금리 상승 압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론 미국이 무역적자를 낮은 비용으로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재정정책 여력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이 과정은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BRICS 결제 시스템이 SWIFT를 대체할 수 있을까?
완전한 대체는 어렵지만, 특정 지역·특정 거래 영역에선 이미 대안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SWIFT는 전 세계 1만 1,000개 이상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네트워크 효과가 있지만, BRICS 결제망은 역내 무역·에너지 거래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습니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이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까?
포트폴리오 다변화 관점에서 금·원자재·비달러 표시 자산 비중을 고려할 만합니다. 다만 탈달러화는 장기 트렌드이므로 단기 변동성에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질 때마다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지는 패턴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탈달러화 논의는 이제 단순한 담론이 아니라 실제 숫자와 사례로 확인할 수 있는 흐름입니다. 다만 그 속도와 범위, 그리고 최종 결과가 어떤 모습일지는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달러 패권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진 않겠지만, 10년 후 글로벌 금융 지형은 지금과 상당히 다를 겁니다. 지금 벌어지는 변화들이 그 방향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으니까요.